
세상은 흘러간다. 혈액이 흐르고, 물감이 흐르고, 주가가 흘러간다. 모든 것은 흐름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것은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이다.
이른 아침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동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카오스 구조와 유사한 패턴으로 구성된 쏟아지는 물줄기에 세수를 한다. 컴퓨터가 예측한 기상예보를 읽는다.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나와, 바람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어진 도시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본다. 신호 체계에 맞춰 자동차의 흐름이 흘러간다.
흐를 수 있는 모든 액체와 기체를 합쳐 ‘유체’라 하고, 이런 유체의 특성과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을 ‘유체역학’이라고 한다. 과거 유체역학의 응용 범위는 대부분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 한정되었고, 복잡한 수식과 난해한 이론으로 뒤섞인 이 무시무시한 학문은 전공자들 외에는 그 내용을 알 필요도 없고 용어 조차 이해도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였다고 한다. 나 또한 과학을 공부하면서도, 유체역학은 항상 범접할 수 없고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없는 멀리 있는 벽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물리 교과서의 한 단원에 실려 있는 기초적인 세 개의 유체 법칙들조차 너무 어렵고 두렵기만 했다.
유체역학 이론은 우리 삶의 곳곳에 흘러 들어 기존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참신한 방식으로 풀어내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책은 세상의 흐름에 대해 유체역학이라는 언어로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또는 공학의 울타리를 넘어서기 시작한 유체역학을 세상의 흐름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교통, 경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흘러 들어간 연구 성과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사소하고 익숙한 일상 속의 현상들을 새롭게 관찰할 수 있는 ‘렌즈’를 선물해준다.
몇 년 전 영화의 흥행과 함께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물리학자 킵 손 교수와 놀란 감독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우주의 영상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은 물리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유체역학에서 온 한 방정식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는 바로 19세기 나비에와 스토크스에 의해 완성된 공식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은 거의 모든 유동을 설명할 수 있 는 매우 강력한 방정식이며, 수학적으로는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이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지만 200년 넘게 풀리지 않고 있고 일반해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과연 어떤 방정식이길래 그리 어렵다고 하는지 궁금해 유도 과정을 찾아봤는데, 그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 하는 것만도 매우 고달팠다.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 역사적으로 많은 시도들이 있었고, 이 고난과 역경에 돌파구를 뚫어준 것은 컴퓨터과학의 발전이었다. 최근 들어 컴퓨터로 유체의 유동 현상을 해석하며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근사적인 수치해를 구하는 ‘전산유체역학’이 유체역학의 주된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해석하고자 하는 유체 덩어리를 격자로 나누고 이것을 시간 순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에 힘입어 유체역학은 사회의 많은 분야들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교통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유체역학 이론이 적용된다고 한다. 차량의 수가 많을 때 이들은 연속체인 유체와 유사하게 행동한다. 교통의 흐름을 유체역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난 ‘교통류’ 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와 같이 어떠한 현상을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교통류는 끼어들기와 급제동 같은 인간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때문에 유체와 차이가 발생한다는데, 미래 자율주행자동차와 도시 인프라를 총괄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사라질 것 같다. 죄수의 딜레마와 같이 개개인의 의사에 따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인간과 달리 유체역학을 적용해 설계한 자율주행기술은 완벽히 교통류를 제어해 교통 체증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주위 환경에 대한 관찰과 창의적인 새로운 발상에서 유래한다. 예술이 표현했던 과거의 모습을 과학을 통해 추측해내기도 한다. 유체역학은 붓과 물감의 자취뿐만 아니라 그림 속 현상 그 자체를 재현하는 모작을 그려낸다. 매칼리스터 박사는 변종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재현해냈다. 고흐의 작품에 표현된 별빛에서 난류의 물리 법칙을 찾고, 시케이로스 기법의 불규칙한 무늬와 폴록의 흩뿌려진 물감에서 레일리-테일러 불안장성 원리를 찾아낸다. 전산유체역학을 기반으로 한 물감 흩뿌리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미술 기법과 사조를 만들어보고 싶다.
유체역학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돈의 흐름 또한 포착하려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주식 시장에 브라운 운동, 정규 분포, 레비 안정 분포 등을 적용해 주식 시장 흐름의 예측을 시도해왔다. 날씨를 예측하는 데 유체의 흐름 분석을 슈퍼컴퓨터가 담당하는 것처럼, 데이터 처리 속도가 더 빨라지고 적절한 모델이 개발된다면 금융 시장의 흐름도 대략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열전도 방정식의 해를 풀었기 때문에 블랙-숄즈 방정식을 쉽게 풀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금융 시장에 유체의 흐름 분석의 방법을 적용하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문명의 산물들은 자연 현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고층 빌딩 사이의 바람길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수단으로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고층 빌딩의 고도와 배치를 고려해 도시 외곽의 바람을 도심으로 끌어들여 대기 정체를 완화시킨다는 아이디어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시내 전 역을 바람이 잘 드나들도록 재설계했다. 또한 녹지를 조성해 열섬 현상도 해결했다고 하는데, 그처럼 서울을 둘러싼 산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공기가 시내로 잘 흘러가게 조절할 수 있다면 서울 대기질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속도와 물체의 운동으로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는 그 자체가 과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스포츠과학은 앞으로 더 빛을 발할 것이다. 다양한 변화구는 마그누스 원리로 설명이 되며 골프공의 딤플, 전신수영복 등은 유체역학적으로 설계된다. 날아가며 궤적을 그리는 모든 원거리 무기에는 유체역학이 적용된다. 탄도학, 항력 계수, 물수제비 뜨기 원리와 도약 폭탄, 수공 등 다양 한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굽고, 찌고, 끓이는 일련의 요리 과정은 열이 음식을 이루는 유체에서 이동하는 과정이다. 유수 해동법은 대류 열전달 계수 식을 이용한 유체역학적인 방법이고, 미소시루 속 풀어진 된장의 움직임이 순환하는 모습은 레일리-베나르 대류로 설명된다.
영화부터 요리까지 흘러가는 글자들에 몸을 맡기니, 정말 많고 다양한 분야에 유체역학이 사용되고 있으며 지난날의 많은 난제들이 유체역학으로 풀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체역학이라는 학문은 이제 사회 곳곳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렌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세기 유체역학은 공학의 만능 도우미로 우뚝 솟을 것 같다.
21세기는 바야흐로 데이터의 시대라 하고 싶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게 불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정보통신 기술, 빅데이터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이가 유체역학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행인들의 흐름이 파악되고, 국가 간을 넘나드는 재화와 서비스들이 데이터화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넘쳐나는 정보 속 키워드들이 분류된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풀어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유체역학이 물 질의 경로,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유체역학에 사용되는 모델과 방법이 사회물리학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사회적 원자’를 읽고 물리 모델과 물리학적 방법이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특히 유체역학이 ‘흐름’을 다루기 때문에 인간 사회 속의 변화하는 현상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수준의 ‘패턴’을 연구하는 사회물리학에 유체역학은 매우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맺는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와 함께 세상이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삶이란 그저 그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삶이란 그저 그 유체역학과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학년 초에 과학기술독후감대회 때문에 썼던 글.
대체 왜 이 책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비문학(특히 과학) 쪽 독후감 쓰기 분야에서 정석적인 꼼수인 [뭔가 현학적인 문장들로 시작하기-내용 나열, 감상 또는 아이디어 제시-저자는 이렇게 맺는다]으로 쓰긴 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물리랑 유체역학을 그렇게 싫어하게 될 줄은 몰랐지. 안 좋아하거나 관심없는 책으로 독후감을 쓰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 예시인 것 같다.
다시 읽어보니까 또 무슨 기술독재를 옹호하는 뉘앙스처럼 읽히는 것들이 있네. 이때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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