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영화 속 바이오테크놀로지: 상상이란 매체로 미래를 엿보다

    뉴스 자료화면으로만 보던 그 멀티피펫을 처음 써보던 날, 인천대 R&E, 2021

    “영화는 미래 세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기발함이 있다.”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현실과 무관하지 않게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영화가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책등의 문구와 같이 이 책은 “오늘의 영화를 통해 내일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읽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내일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읽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19세기 말이 화학의 시대, 20세기 초가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바야흐로 생물학, 그중에서도 생명공학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부터 mRNA 백신까지, 21세기에 들어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학문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엄청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어린이 과학 잡지에 나오던 꿈의 바이오테크놀로지들 중 많은 것들은 벌써 개발이 완료되었고, 그중 지문 및 홍채 인식 기술 등 성공적으로 상용화되어 2021년의 우리 삶에 스며든 기술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21세기의 생명공학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활발하게 발전되어가고 있으며, 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내일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향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비합리적인 거부감을 없애고 음모론에 빠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COVID-19 팬데믹에서 이 책과 같이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오테크놀로지를 다가가기 쉽게 설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빌 게이츠가 코로나바이러스를 개발했다’부터 ‘백신을 맞으면 베리칩이 몸에 삽입된다’까지,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음모론은 끝이 없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메커니즘과 현주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알아보는 것은 그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휘말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로부터 떠오르는 이미지 중 많은 것들은 영화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쥬라기 공원(1993)>의 흥행으로 많은 사람은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호박 속의 모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호박 속에 갇힌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고, 간 중간에 파괴된 부분들을 개구리의 DNA로 메워 넣어 이로부터 공룡을 부화시킨다. 실제론 이 방법으로 공룡을 복제하는 것은 DNA의 유통기한이 100만 년에 불과하기에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쥬라기 후기에 공룡에서 진화한 조류의 유전자를 원래대로 돌리는 유전자 역진화를 통한 ‘공룡화된 닭’의 탄생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2015년 미국 연구진은 닭 수정란에서 부리를 자라게 하는 단백질을 억제해 닭 배아가 부리 대신 공룡과 비슷한 모양의 주둥이를 가지게 하는 데 성공했고, 2016년 브라질과 칠레 연구진은 닭의 수정란에서 ‘인도 고슴도치’라는 별명의 유전자를 억제하여 닭의 종아리뼈를 공룡처럼 길게 성장시켰다. 실제로 멸종된 동물을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복원하는 데 성공한 경우도 있다. 태어난 지 7분 만에 숨을 거두긴 했으나 유럽 연구진은 2003년에 멸종된 피레네 아이벡스(산양의 일종)을 되살리는 것을 성공했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멸종 위기 동물의 보전에도 큰 역할을 한다. 종 보전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집단들은 개체수가 작고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위기를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표본 등의 유전자를 이용해 복제된 동물은 유전자 풀을 크게 늘려준다.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다른 여러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인간이 상상하는 영역은 점점 넓어져 왔다. <스파이더맨(2002)>,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스파이더맨 2(2004)>, 책 전체에서 총 세 번이나 등장한 스파이더맨의 원작은 1960년대에 그려진 만화이다. 주인공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돌연변이가 일어난 거미에게 물린 원작과 달리 2002년에 개봉된 <스파이더맨>에서는 재조합 DNA 기술로 만들어진 슈퍼 스파이더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다. 재조합 DNA 기술이 1973년에 개발되었으니 원작 만화엔 그 ‘슈퍼 스파이더’가 존재할 수 없다. 그 후 2004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2>에서는 스파이더맨이 BT(Biotechnology)와 IT(Information Technology), NT(Nanotechnology) 융합기술로 탄생한 악당과 맞서 싸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mRNA 백신 등 최근에 개발된 바이오테크놀로지로부터 창작자들이 어떤 영감을 받았을지 내심 궁금해진다.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유전자 검사의 원래 목적은 대체로 유전 질병을 미리 찾아내 예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0년 유튜브에서 유전자 검사가 엄청나게 유행하도록 만들어준 목적은 다름 아닌 ‘조상 찾기’였다. ‘조상 찾기’ 유전자 검사는 여러 SNS와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사람이 유전자 검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어떻게 유전자 검사로 조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혈액형-B형 남자친구’에서는 전세계 사람들의 혈액형 분포를 통하여 B형이 아시아에서 기인하여 서쪽으로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을 이야기한다. ‘조상 찾기’ 유전자 검사는 이처럼 생물학적 자료와 역사학, 지리학 등을 결합함으로써 가능하다.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통해 인류의 족보를 추적한 첫 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의 교감-아바타’에 소개된 인류의 시조할머니인 ‘미토콘드리아 이브’이다. ‘조상 찾기’ 검사는 이가 심화되고 확장된 버전이다. 우리는 ‘하플로그룹’의 분포를 이용해 고대 인류의 이동 경로와 여러 민족의 기원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하플로그룹은 DNA의 돌연변이 정도에 따라 구분된 유전자의 집단이다. 돌연변이 중 중립적인 돌연변이는 생물의 생존에 치명적이지 않으므로 시간에 따라 누적된다. 인류가 거주지를 바꿀 때 원집단의 일부만 이동하게 되므로 분리된 집단은 원집단보다 중립 돌연변이의 다양성이 낮다. 이 돌연변이 다양성을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면 같은 조상을 가진 집단별로 분리할 수 있다. 모계 혈통을 파악하는 데는 미토콘드리아 DNA, 부계 혈통을 파악하는 데는 Y염색체가 사용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인류가 퍼져 나가며 발생한 병목현상, 창시자 효과 등으로 발생한 상대적인 극심한 인간 유전자 변화로 각 민족의 혈통도 추적할 수 있다. 통계분석을 통해 비율을 확인하는 하플로그룹 연구를 통해 특정 민족을 나타내는 하플로를 알 수 있고, ‘조상 찾기’ 검사는 이 하플로들과 각 개인들의 유전자를 매칭해주어 내가 어떤 민족의 혈통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알려준다. 하플로그룹과 같이 생물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탐구하는 것을 DNA 고고학이라 한다. DNA 고고학의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 2020년 박종화 UNIST 교수팀이 한국인이 형성된 유전적 과정을 현대인과 고대인의 게놈을 연구함으로써 새롭게 제시한 것이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로부터 새로운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형태가 비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향수’ 장에서 책은 시각, 청각, 후각 모두를 사용하는 ‘시청후자’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몇몇 기본 물질로 모든 종류의 냄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들을 병에 담아 TV에 장착하고 방송국으로부터 수신하는 후각 신호에 따라 이들 물질을 적절히 혼합해 다양한 냄새를 제조하여 방출하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뇌과학 기술을 이용해 후각 신경 자체를 자극하는 방법으로도 ‘시청후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더맨과 대결하는 BT-IT-NT 융합기술-스파이더맨 2’에서는 뇌-컴퓨터 접속을 통해 쥐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휠체어, 원숭이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을 소개한다. 이를 거꾸로 이용하면 뇌에 전기 자극 등을 주어 특정한 냄새를 맡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COVID-19의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처럼 특정한 냄새를 맡지 못하거나 다른 냄새로 맡는 환자들의 뇌를 연구하면 각각의 후각 경로가 어떤 냄새를 담당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데몰리션맨(1993)>, <아일랜드(2005)>, <6번째 날(2000)>, <가타카(1997)>가 제기한 질문들과 같이, 바이오테크놀로지 앞에 놓인 높은 산들 중 하나는 바로 윤리적, 사회적인 문제이다. 복제 인간, 배아줄기세포 등에 대한 대표적인 윤리적 문제들뿐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또한 상당히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맞춤 아기 시술, 유전자 검사의 보편화에 의한 유전자에 따른 계층 분리 등의 문제들도 있다. 인공적으로 편집되어 ‘해로운 형질’을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과연 이상적인 곳일지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많은 창작물 속에서 인간 사회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어둠들이 거세된 사회는 항상 부정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미래에는 생체 인식 기술, 건강 정보 수집 등의 바이오테크놀로지들이 더욱 상용화되어 우리가 현재 인터넷을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때 위조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악마의 서사시’의 사무원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신분증을 잃어버리기만 했는데도 사회에서 그 존재가 지워지지 않도록 말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정부 또는 기업과 같은 거대한 집합체에 의하여 어떻게 쓰일지, 인간 게놈 정보 등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자원을 사유화하려는 시도가 있는지 등 많은 단체와 개인들을 감시하는 것도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문제이다. 이미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진행 중에도 DNA 염기서열을 밝힌 결과들을 특허 출원하려는 벤터와 이를 반대하는 왓슨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유전자 코드의 잠재적 금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고, 머크(Merck)사와 같이 인간 게놈 정보를 사업화하려는데 맞서는 움직임도 있었다. 바이오테크놀로지가 낳게 될 수많은 산물들을 인류가 어떻게 이용할지, 개인의 선택과 권한이 불러일으킬 영향을 예측하고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중 한 문장을 인용해보려 한다. “지난 세기의 역사가 정부에게 유전적 ‘적합도’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을 때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쳤다면, 현시점에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그 힘이 개인에게 맡겨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이다.”


    역시 그놈의 과학기술독후감대회 때문에 쓴 글이다. 올해는 그나마 관심있는 분야의 책으로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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